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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3] 곤란한 땐 말보다 행동!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대인배로 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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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3-11 06:21 조회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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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땐 말보다 행동!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대인배로 살기(2)

문 성 환(글공방 나루)

그래서일까. 곤의 때가 되면 대인과 소인은 극명하게 길을 나눈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공자는 55세에서 68세까지 추방에 가까운 국외 망명자 신세였고 해외 구직자였다.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도 몇 차례 겪었다. 공자 일생이 어느 곳 하나 쉬워보였던 때는 없지만 14년에 걸친 천하 주유의 시간은 공자에게 곤(困)의 때였다고 할 만하다. 언젠가 공자와 제자들은 진(陳)나라에 머물고 있었는데, 며칠째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따르는 이들이 병이 나기 시작했고, 일어나지 못하는 일들도 있었다. ‘마침내’ 자로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스승을 찾아와 투덜거렸다. “군자에게도 궁(窮)함이 있습니까?”

자로는 자타공인 공문(孔門)의 충직함 제일 제자다. 그런데 자로는 대체 무엇에 탄식했던 것일까. 배고픔? 추위? 세상에 인정받지 못함? 하지만 평소 자로의 품행에 비추어보면 자로의 불만은 최소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불편함 등을 호소(혹은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그러한 소인 자로는 최소한 <논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자로의 투덜거림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처럼 부족한 사람 말고, 우리 스승님처럼 훌륭한 군자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연히 궁할 수 있다. 하지만 군자는 곤궁해지면 지킬 줄 알고(固窮), 소인은 곤궁하면 흐트러진다(濫).” 군자도 궁할 수 있고 소인도 궁할 수 있다. 이때의 곤궁함이 바로 곤(困)인데,  그러므로 소인과 군자는 곤한가 곤하지 않은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곤의 때를 어떻게 겪는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곤궁함도 군자가 겪으면 때깔이 다르다. <논어>, ‘위령공’편에 전하는 이야기다.

clothesline-g8e09d9e64_640다시 말해 곤궁함도 군자가 겪으면 때깔이 다르다.

군자(대인)와 소인. 말이 나온 김에, 곤궁의 때에 제대로 곤궁해지는 소인들 이야기도 해보자. 괘의 모양을 보면, 곤괘에는 양효와 음효가 각각 세 개씩이다. 한편(감괘)에선 두 개의 음효 사이에 양효가 잠겨버렸고, 다른 한편(택괘)에는 두 양효를 맨 위에서 음효가 가로막고 서있다. 요컨대 대인=군자(양효)가 소인(음효)의 늪에 빠져있거나 소인에 의해 막혀버린 모습이다.

어찌됐건 곤괘의 때엔 소인들이 군자들을 곤란하게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곤괘에 등장하는 소인-됨의 끝판왕은 곤괘 세 번째 효(六三)다. 효사는 다음과 같다. “돌에 눌려서 곤란하고 가시풀에 찔리며 앉아 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시작은 돌에 눌려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산이나 설악산 같은 데서 볼 만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내리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바위를 들이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확실히 피곤하고 곤궁해질 만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어려움은 가만히 있는 나를 거대한 바위가 느닷없이 덮친 데 있지 않다. 내가 들이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왜? 어떻게? 이를테면 굳이 ‘입산금지’나 ‘통행로없음’ 같은 곳만 찾아 다니다가 자칫 거대한 바윗돌에 가로막혀서는 길이 없다며 씩씩거리는 모습이다. 공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지적했다. “곤란해야 할 바가 아닌데도 곤란하게 되면 반드시 이름이 치욕스럽게 된다.”(feat.계사전)

여기에 가시나무 덤불을 깔고 앉는 상황의 어려움이 더해진다. 거우질려(據于蒺蔾). 효의 기운과 위치에서 보면 유약한(음효)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물색없이 보이는 대로 아무 데나 깔고 앉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깔아뭉갠 것이 자신보다 훨씬 고귀한 것들이라면? 그때의 마음이 바로 가시덤불을 깔고 앉은 마음 아닐까. 이 역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다. 소인의 입장에서 군자의 반듯하고 올바른 뜻은 가시방석일 밖에. 다시 공자의 말을 빌리자면, “앉아야 할 곳이 아닌데 앉으니 반드시 몸이 위태로워”진 상황인 셈.(feat. 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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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볼 수 없다’[入于其宮, 不見其妻]. 그리고 ‘흉하다’[凶]. 집에 돌아간다고 했으니, 어찌어찌 이 곤궁한 상황을 겨우 헤쳐 나아간다는 말일 것 같은데, 상황이 끝까지 고약하다. 아니 이건 마치 고약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보통은 아무리 엄청난 고생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어찌어찌 돌아와 행복해졌다더라…라고 말하게 되지 않나? 하지만 웬걸, 곤괘(삼효)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의 결론은, ‘헤쳐나가기 힘들고 어렵다, 설혹 겨우 헤쳐나간다면… 그래도 또 안 좋다, 흉!’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처음으로! 곤괘의 흉칙함은 이제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끝판왕은 끝판왕인데 끝이 없다고 말하는 끝판왕인 셈. 안 갈 수는 없는데, 가도 가도 나쁘다고만 말하는. 그렇다면 실제로 인생에서 이런 때를 만났을 때 어쩌라는 것일까. 그냥 이번 생은 접는다이(die)?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기 곤괘 삼효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와 곤괘 삼효로 이야기해보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하나.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의 중국. 제(齊)나라의 대부 최저(崔杼)는 죽은 당공(棠公)을 조문하러 갔다가 그의 아내 동곽녀(당강棠姜)의 미모에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자 최저는 최후 수단으로 주역점을 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때 나온 점괘가 곤괘 삼효였다. 하필곤삼(何必困三)!

술사(진문자)는 이렇게 말했다. “돌덩이에 막혀 곤궁하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의지에 지킨다는 것은 의지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고 한 것은 돌아가 쉴 곳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feat. <춘춘좌전>, 노양공25년). 누가 봐도 이 결혼은 안 된다는 점괘였고, 끝내 흉하다는 소리였는데, 최저는 신박한 해석으로 이 점괘를 뒤집어서(정확히 말하면 우기고 우겨서!) 기어이 동곽녀를 아내로 삼는다.(‘집에 돌아가도 아내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이미 죽은 동곽녀의 남편 얘기여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wedding-g0fee77d6a_640누가 봐도 이 결혼은 안 된다는 점괘였고, 끝내 흉하다는 소리였는데, 최저는 신박한 해석으로 이 점괘를 뒤집어서 기어이 동곽녀를 아내로 삼는다.

최저는 동곽녀와 행복했을까. 어쩌면 잠시 잠깐 그랬을지도… 하지만 이 인연을 기점으로 제나라의 집정대부였던 무소불위한 권력자 최저의 일생은 롤러코스터처럼 급전직하한다. 최저의 시대 제나라의 군주는 제장공(齊壯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장공은 최저의 집을 드나들다가 동곽녀를 보게 되고, 반하게 되고… 사통하는 사이가 된다. 결국 소문은 최저의 귀에 들어가고, 제장공은 최저의 집에서 최저의 부하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이 사건은 최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사관들에 의해 ‘최저가 군주를 시해했다’는 기록으로 남는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제경공)와 사통하고, 군주를 죽이고, 그 군주를 죽였다는 기록이 역사에 남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최저에게는 본래 두 아들(최성, 최강)이 있었는데, 다시 동곽녀에게서 아들을 하나(최명) 더 얻었다. 권력이 있는 곳엔 예외없이 권력 싸움이 있고, 그 싸움은 피를 보지 않은 적이 없다. 최저의 본처 소생 두 아들은 하필이면 최저의 정적이었던 경봉의 힘을 빌려 최저의 집으로 쳐들어가 배다른 아우 최명을 살해한다. 최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자신의 측근 세력이 모두 두 아들에 의해 제거된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봉은 일이 끝나자 최저의 두 아들을 포함해 최씨 가문 사람들을 모두 제거했다. 최저로서는 복수하러 나아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 이 과정에서 최저의 부인 동곽녀는 자살했다. ‘집에 돌아왔으나 부인을 볼 수 없다’… 최저는 이렇게 흉(凶)했다. 기원전 548년, 제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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