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진실한 믿음과 습관의 힘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감성에세이] 진실한 믿음과 습관의 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3-08 08:34 조회256회 댓글0건

본문


진실한 믿음과 습관의 힘

김 태 희(감이당)

일요주역스쿨 4학기 중반에 접어든 어느 날, 고대하던 ‘점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흥미진진했던 강의 시간에 이어 일요주역스쿨 전원이 참여하여 실습을 했다. ‘일요주역스쿨이 2023년에는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온 점괘는 중부괘 구오효, “진실한 믿음으로 천하의 민심을 묶어두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有孚攣如, 无咎)”. 효사중 ‘연여(攣如)’의 해석에 마음이 끌렸다. “묶어두듯이 한다”고 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묶어두듯이 한다”는 걸까? 올 한해 주역과 니체를 공부하면서, 고전을 공부하는 즐거움에 접할 수 있었고 학인들과 새로운 만남의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건지 적잖은 의심과 흔들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뭔가가 나를 억지로라도 공부에 묶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묶어 두듯이 하는 것’은 진실한 믿음으로부터

중부괘 구오효에 대한 해설을 보면 “묶어두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다. 이 효사만으로는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주역 64괘중 ‘연여’가 나오는 다른 괘를 찾아보니 다행히 소축괘 구오효에 나온다. “진정한 믿음이 있다. 사람들을 이끌어 부자가 이웃을 도와준다(有孚, 攣如, 富以其隣)”. 여기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연여’의 방법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부자가 이웃을 도와준다’인데, 진실한 믿음을 얻으려고 자신의 부로 이웃을 돕는다? 이건 주역의 방법이 아니다. 부자가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부자가 진실한 믿음을 가진 결과이지 진실한 믿음을 얻기 위해 도와주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다시 중부괘 구오효의 효사를 본다. 이 효사 안에 ‘연여(攣如)’, 즉 묶듯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효사는 3개의 단어로 구성돼 있다, ‘유부’, ‘연여’, 그리고 ‘무구’이다. ‘무구’는 ‘유부, 연여’의 결과다. 남은 단어는 ‘유부’, 묶는 듯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유부’, 진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유부’에서 어떻게 묶어두듯이 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을까. ‘유부’의 힘을 알아보기 위해 소축괘의 ‘유부’를 다시 살펴보았다. 소축괘의 ‘유부’는 육사효와 구오효에 각각 나온다. 정이천의 역전에 따르면 소축괘의 주도괘는 구오효가 아니라 육사효다. 육사효는 소축괘의 유일한 음효로 다른 5개의 양효를 제지하여 축적을 이뤄내는 대단한 효이다. 이 효가 가지고 있는 ‘유부’의 힘은 어떨까? 육사효의 ‘유부’에 대해 정이천은 이렇게 설명한다. “巽괘(상괘)는 陰이고 그 체질이 유순하여 오직 공손하고 순종함으로써 강건함을 회유할 수 있을 뿐이지 힘으로 강건함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정이천 역전, 239쪽)라고 한다. “하나의 음이 다섯 양을 제지하여, 묶어 놓을 수는 있지만 견고하게 묶어 놓을 수는 없으므로” (정이천 역전, 241쪽)라고도 한다.

소축괘 육사효의 ‘유부’는 양효들을 제지하고 이끌어 축적을 이뤄내지만 “회유할 수 있을 뿐이지 강건함으로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견고하게 묶어 놓을 수는 없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중부괘의 ‘유부’는 어떻게 다르길래 ‘묶어두듯이’ 할 수 있다는 걸까. 중부괘의 괘상부터 유심히 살펴보기로 한다. 중부괘는 괘상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부괘의 구이효와 구오효는 둘 다 강건한 양효이고 중정의 덕까지 갖췄다. 여기에 두 음효의 힘이 보태진다. 괘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육삼효, 육사효 두 음효는 ‘비움’의 상징이다. 아래위로 빼곡하게 들어선 양효 한가운데 위치하여 확연하게 ‘비움’을 보여주는 두 음효에서 마치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흡인력이 느껴진다. 이건 뭐지? 처음 볼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들여다볼수록 빨려드는 것 같다. 소축괘의 ‘유부’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양효와 음효의 시너지로 증폭된 엄청난 힘이 ‘돈어’ 즉, 돼지와 물고기 같은 미물까지 감응시킨다는 괘사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중부괘는 진실한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통하니 길하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유부’의 힘이 이 정도라면 “묶어두듯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습관이 믿음을 강하게 한다.

중부괘 ’유부‘의 막강한 힘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유부‘의 막강한 힘을 어떻게 공부로 가져올 수 있을까? 중부괘의 다른 효사들을 본다. 각각의 효에는 진실한 믿음에 이르는 가파르고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초효는 믿을 만한지 스스로 깊게 따져 보라고 한다. 일단 믿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虞, 吉, 有他, 不燕). 역시 심상치 않은 2,3효를 지나 4효에 이르면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짝을 잃는 정도에 이른다(月幾望, 馬匹亡, 无咎). 이렇게 해야 비로소 5효의 ’유부‘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효들이 보여주는 것은 진실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길고도 험난한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묶듯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기까지 계속 의심하고 흔들리며 공부를 해야 하거나, 혹은 그러다가 중간에 좌초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중부괘를 옆으로 밀어두고 자문해 본다. 혹시 지금 나를 공부에 묶는 진실한 믿음이 있다면 그건 뭘까? 2023년도 과정 안내가 감이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날 서둘러 수강 신청을 했다. 선생님께서 미리 귀띔을 해 주셔서 사전에 생각할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사실 감이당 공부를 대체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런데 10개월 전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난 감이당 공부가 어떻게 다른 선택지들을 뒤로 밀어내거나 내 일상에서 사라지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내 책상 앞에는 지난 10개월 새로 사귄 책들이 주루룩 꽂혀 있다. 예전 같으면 책 껍데기만 보고도 부담스러워할만큼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책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범상치 않은 책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고 그것도 소설이나 가벼운 수필 정도에 그쳤던 내게 주역과 니체는 매우 낯설고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 때문에 일요일 강의와 세미나 시간을 준비하는 일은 일주일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무런 느낌 없이 그저 낯설음과 난해함으로 다가오는 책을 읽기는 정말 힘들었다. 두 주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발제는 독서를 더욱 힘겨운 작업으로 만들었다.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이야깃거리까지 찾아야 했으니까. 사실은 발제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매주당 2괘 정도의 분량에 불과했던 주역 암기도 고역이었다. 매 학기 말 써야 했던 에세이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발표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급해지고 아무리 다듬고 고쳐도 글이 나아지기는커녕 두서가 없어지고 유치해졌다. 매주 그렇게 나름의 분투를 하는 동안 일상은 바뀌어 갔다. 독서, 주역암기, 글쓰기라는 새로운 일이 일상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매주 반복되는 습관이 되었다.

매주 그렇게 나름의 분투를 하는 동안 일상은 바뀌어 갔다.

일요일은 늘 준비가 덜 된 불안감으로 감이당을 향했다. 일요일은 강의를 듣기도 하지만, 공부한 내용에서 각자가 느낀 점, 배운 점을 확인하고 서로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역, 니체의 문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인생의 교훈을 얻어낸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산 세월에 비해 생각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독서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절감했고 많이 창피했다. 억지로 꿰어맞추다 보니 어색하기 일쑤고, 다른 소재가 없다 보니, 부득이하게 남들에게 꺼내 보이기 싫은 나, 과거의 나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발제, 토론, 그리고 에세이 등 말과 글을 통해 드러나는 내 모습을 일요주역스쿨 멤버들은 엄청난 인내심으로 지켜 보고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렇게 매주 반복되는 일요일의 공부 시간은 초라한 내 모습과 내 안의 불편한 문제들과 대면하는 고통스럽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자리잡은 습관, 일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일주일의 일상이 지난 10개월 내게 일어났던 가장 큰 변화였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다른 선택지들은 어느 사이 내 삶과 내 일상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사라졌다.

중부괘 오효가 던져 준 질문, ’나를 공부에 묶어줄 진실한 믿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내가 제출하고 싶은 첫 번째 답은 바로 이것, 훌륭한 벗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습관이다. 그 습관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씨름하고 싶고, 나를 공부에 묶어주고 물고기와 돼지까지 감응하는 진실한 믿음을 키워 나가고 싶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결정하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