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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에세이] 속도가 아닌 리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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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2-10-30 10:46 조회64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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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아닌 리듬으로

남 연 아(감이당)

자본의 속도에 물들어 있는 일상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주 종목은 100M 달리기였다. 체력장을 하면 여학생 중 상위권을 차지했고, 운동회를 하면 반대표 계주로 출전했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회는 삶에서 사라졌지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달리기 시합에 참여했다. 첫 회사는 글로벌 스포츠 의류 브랜드였는데 회의 때마다 상품, 마케팅, 영업 모든 영역에서 이 업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던 나는 누구보다 빨리 MZ세대의 트렌드를 섭렵해야 했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신제품, 핫플레이스, 셀럽에 대한 정보를 인스타와 유튜브를 통해서 분 단위로 업데이트했다. 빠른 업데이트는 곧 나의 능력과 성과였고, 동료들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하지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은 광고를 만들어내서 매출을 올리라는 압박을 주었고, 점점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본의 속도에 이끌려 내 삶이 전복될 것만 같았고, 이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백수가 되니 출퇴근 시간에 허겁지겁 달리며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나의 일상도 달리기 대회와 같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횡단보도는 꼭 건너야 한다면서 달렸고, 쇼핑몰에 가면 출입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했고, 네이버 간편 결제・쿠팡잇츠 치타배달・마켓컬리 새벽배송같이 간편하고 빠른 서비스를 이용했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5분짜리 영상을 볼 때도 빨리감기를 했다. 자본의 원리인 최소 시간 대비 최대 효율을 뽑아야 하는 생산성에 맞춰 일상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렇게 효율성을 따지지만, 디테일과 끈기는 부족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만 하고, 마무리 짓는 힘이 부족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이 더 들었던 적이 많았다.

어리석은 자여, 문제는 속도다

부처님의 법으로 일상을 탐구하면서 자본의 속도에서 벗어나 내 일상을 조율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원래 기질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작용했다. 천천히 공부하자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새벽부터 밤까지 낭송과 강의로 스케줄을 꽉꽉 채웠다. 거기에 프리랜서 일까지 겹치면서, 발제문에 오타를 냈고, 지하철이 오면 또다시 뛸 준비를 했다. 이런 분주한 삶은 부처님의 법과는 멀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나 성격의 장단점은 있는 거라며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그제야 무의식 중에도 달리기 포지션을 취하는 몸과 마음은 기질의 장단점을 넘어서 이번 생에 극복해야 할 나의 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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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자라면 점차로 순간순간 조금씩 조금씩 대장장이가 녹을 없애듯, 자신의 티끌을 없애야 하리.” (전재성 역주, 『법구경』, 한국빠알리성전협회, 575쪽)

어떤 바라문이 수행승을 지켜보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씩 수행자의 편의를 챙기면서 자신의 업의 때를 제거한 인연담이 있다. 수행승이 가사를 걸치는데 옷자락이 풀에 닿아 이슬에 젖는 것을 본 바라문은 삽을 가져와서 탈곡할 마당처럼 깨끗이 만들었다. 다음 날 그 장소에 와서 한 수행승이 가사를 걸치는데 이번에는 옷자락이 땅에 닿아 흙먼지에 끌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다음날 그 장소에 모래를 깔았다. 어느 날 식전에 폭염이 덮쳐서 수행승들이 가사를 걸칠 때 땀이 몸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그 장소에 천막을 지었다. 또한 비가 올 때 가사가 비에 젖는 것을 보고, ‘여기에 회당을 지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회당을 지었다. 회당을 짓고 축성식을 할 때 수행승과 부처님을 초대하고, 회당을 짓게 된 연유를 부처님께 말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현명한 자는 조금씩 조금씩 착하고 건전한 일을 해나가고, 점차 자신의 악하고 불건전한 업의 때를 제거한다고 말했다. 

섬세하게 수행승을 살피며 점점 공덕을 짓는 바라문의 인연담을 보면서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았다. 그동안 나는 남을 잘 배려하고, 문제없이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잘 지낸다는 의미는 내가 피곤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 유지였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료들과 소통할 때는 빠르고 간결하게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만 했고, 사적인 대화는 점심시간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또한 효율적인 소통을 중요시 생각해 서로의 스케줄을 구글 캘린더로 공유했고, 집안일은 더 꼼꼼한 남편의 몫이었다. 각자의 라이프를 존중한다면서 남편의 술 약속을 크게 상관하지 않았고, 나는 일과 공부에 집중했다. 존중이라고 포장된 마음은 ‘나 빨리 가야 하니깐, 방해하지 마’라는 이기심이었다. 

관계 또한 자본의 논리인 효율성의 연장선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주마처럼 내 앞만 바라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경쟁 상대 아니면 걸림돌로 여긴다. 오직 나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다. 올해 공부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를 낳고서도 다른 사람의 말이나 사회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앎을 중심으로 삶을 꾸리면 평안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남편도 궁금해하면서 언젠가 따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급했고, 그에게 남겨준 건 공허함과 쓸쓸함이었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즐겼던 콘서트, 쇼핑, 맛집 투어는 이제 시시하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영화 볼래?’ ‘쇼핑 갈래?’ 했을 때 ‘숙제해야 하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처음에 열심히 공부하라고 응원했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헤어질 결심을 했다. 가장 가까이서 함께 가정을 이뤄야 하는 남편을 쏙 빼고 나 혼자 달려간 것은 정작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마음이었다.

pexels-taras-makarenko-593172가장 가까이서 함께 가정을 이뤄야 하는 남편을 쏙 빼고 나 혼자 달려간 것은 정작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마음이었다.

공감으로 벗어난 마음의 무명

인연담 속 바라문은 수행승의 불편함을 곧 자신의 불편함으로 생각하고 이슬, 흙먼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챙기면서 나중에는 회당을 지었다. 바라문은 이 일을 하면서 큰 회당을 지어서 깨달음을 얻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의도와 목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수행승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바라문과 다르게 나는 크고 멋진 회당을 지어야 관계도 더 깊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일, 내 공부, 내 삶을 우선 잘 가꿔야 한다며 조급한 마음으로 미래의 허상만 쫓아갔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상대방의 마음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나의 마음도 캄캄한 무명 속에 빠져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해 이 상황을 어찌할지 몰랐고, 목성 중년 도반들에게 경험과 조언을 구하며 손을 내밀었다. 함께 산책하며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셨다.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 아직도 자본의 속도에 끌려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일단 멈추고, 어둠 속에 있는 마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외로움, 쓸쓸함, 두려움이 느껴지면서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라는 나의 억울함과 분노도 서서히 지워졌다. 

억울함이 지워지니 마음속 깊이 그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최근 6개월간 공부에 빠져 함께하는 시간의 양이 부족했고, 또한 대화를 나누는 공통의 주제도 점점 사라졌다. 저녁에 있는 강의와 낭송 스케줄을 정리했고,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쇼핑과 콘서트를 다녔다. 조금씩 관계는 회복되었지만, 이런 시간은 그의 외로움을 살짝 덮어두는 것이지 마음 깊이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도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삶의 탐구가 필요했고, 조심스럽게 명리학 공부를 제안했다. 그동안 공부에 반감을 보였던 남편은 “해볼게!”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저번 달부터 명리학 수업을 들으며 함께 오행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우리 이제 말이 좀 통하네”라면서 신기해했다. 관계는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었다. 속도는 오로지 나에 갇혀있다면, 리듬은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다.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면서. 이제 자본에서 훈련받은 속도를 늦추고, 도반과 발을 맞추며 리듬을 타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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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도반님의 댓글

one of 도반 작성일

"바라문은 이 일을 하면서 큰 회당을 지어서 깨달음을 얻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의도와 목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수행승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나에 대해서도 타자에 대해서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비록 크고 멋진 성취에 도달한다 해도
결국엔 소외만을 낳는다는 것을 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리듬을 타는 즐거운 정진이 되시길 응원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