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설명하고, 만들고자 한 것은 ‘논리체계’다. 토테미즘은 자연을 의인화한다. 의인화된 자연물들 간의 관계를 사고하고, 자연물 간의 관계를 인간 사회의 관계 위에 오버랩시켜 구별된 자연물처럼, 인간 사회도, 사회 안의 인간들도 구별시킨다. 신화의 논리체계 안에서 자연과 문화는 동등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도 썼듯, 신화적 사고 안에서는 자연과 문화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되지 않은 그 자체의 자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여기에서 인간의 위치는, 순전히 자연을 해석하는 자가 아니다. 인간은 토테미즘에 의해 동물들과 상호 변환이 가능한 요소, 신화적 사고에 의해 자연과 함께 사고되는 요소다. 쓰려고 할수록 문장이 꼬이는데, 인간은 신화적 사고에 의해 자연과 동등한 평면에서 사고되면서, 동시에 인간은 그 사고를 통해 ‘인간’의 윤리와 ‘인간’의 정체성, 문화를 만들어낸다.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연을 해석-창조하면서, 또 그 자연에 의해 해석되는 문화 위에 산다. 반면 21세기 도시-인간은 자기를 전경으로 다른 것들을 배경으로 만들며 산다. 결국 자연은 화분의 식물과 길고양이뿐 아니라, 자기 아닌 모든 외부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인간은 외부를 해석-창조하기 위해서, 또 외부에 의해 해석-창조당하기 위해서 좀 더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문의 열쇠는 (신화적 사고에 따르면) 다른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집요한 관찰, 차이를 구별하는 섬세한 감각에 있다.
#토테미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