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궁금하다!] 이야기의 과학, 신화 (1) > MVQ글소식

MVQ글소식

홈 > 커뮤니티 > MVQ글소식

['인간'이 궁금하다!] 이야기의 과학, 신화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1-12-17 23:39 조회779회 댓글0건

본문



이야기의 과학, 신화 (1)
이윤하(남산강학원)

코로나 이후 넷플*스나 왓*, 웨*브 등의 VOD 서비스가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영화관에 가기도 어려워졌고, 실내에 있게 된 사람들이 전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년 쏟아지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정말 쉬지 않고 이야기들을 쓰고,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인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진짜’도 아니고, 나 사는 일과는 그다지 관련도 없는 그 온갖 이야기들을 왜 ‘재밌다’고 여길까?

우리의 ‘이야기 본능’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였던 순간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드라마와 소설이 있다면 원시 사회에는 ‘신화’가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학문 영역 바깥의 소비의 대상 정도로 치부하거나 ‘예술’의 영역으로 집어넣지만, 거인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일생 동안 남아메리카의 신화들을 연구해 『신화학』(‘학’문을 했다고 강조하고 싶다)이라는 네 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이 ‘신화’를 그저 재미로 만든 것도,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화는 원시사회에서 과학하고 철학하는 방법이자 그것의 산물이었다. 얼핏 신화가 철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어떻게 ‘과학’일 수 있을까?

KakaoTalk_20211214_102032523우리에게 드라마와 소설이 있다면 원시 사회에는 ‘신화’가 있었다.

1. 구체의 과학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기승전결에 따라 주변인물들과 함께 사건을 겪고 변화한다는 식의 서사를 갖고 있다. 신화는 이와는 조금 다른 원리를 가지고 서사를 만들어간다. 그 원리를 레비스트로스는 ‘구체의 과학’이라고 이름 했다. 그렇다면, 인색한 사람이 야생돼지가 되고, 표범에게서 불을 훔치는 따위의 이야기들은 무슨 구체적인 과학을 보여주는가?

스펙에 따르면, 미국 동북부 인디언들은 파충류학을 발달시켰다. 그들은 파충류의 각 속을 구별하여 명칭을 붙였고, 종과 변종도 구별하여 각기 다른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중략)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론적이고도 실제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세세한 것에까지도 주의하고 분별할 줄 아는 재능과 관심을 지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텔멘과 야쿠트족은 불임증에 거미와 흰 구더기를 먹고, 오세테족은 광견병에 검은투구풍뎅이 기름을, (후략)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 한길사, p60)

원시 사회의 수렵 채집민들은 주변의 동식물을 섬세하게 인식하고, 분류한다. 테와족은 초목의 잎사귀 형태에 대한 40가지 용어를 갖고 있고, 피나투보족은 600개 이상의 식물 명칭을 갖고 있는 식이다. 이들은 물질의 실체가 우리가 감각으로 인식하는 바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을 통해 경험한 바 그대로 분류하고 질서 지운다.

근대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들의 과학은 다소 비약적이고, 주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불임증과 거미의 연결이라든가, 사냥한 들소의 뱃속에서 꺼낸 새끼의 발육상태와 봄이 오는 시점의 연결은, 우리 과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불임증과 거미의 연결 사이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을 ‘자연이 허락해준 발견’, ‘구체의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근대 과학은 세계의 차원을 구분하는 데에서부터 분석의 메스를 든다. 이를테면 인간의 마음과 물질은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인디언들의 주술이 물질적 현실을 바꾼다는 것을 우리는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물질의 형태와 성질이 어느 정도 연관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 모양의 식물을 먹으면 몸속의 돌 같은 것이 없어진다는 식의 논리(이건 제가 지어냈습니다^^)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근대 과학과 구체 과학의 차이는 하나의 논리가 어느 범위까지를 꿰어낼 수 있느냐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물질을 총체적으로 사유하는가, 아니면 분리해서 사유하는가. 어느 영역까지를 연결된 것으로, 어디부터는 분리된 것으로 사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쨌든 ‘인위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고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 사물들에게서 질서를 발견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과학적 사고’다.

야생돼지와 표범의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보자면, 신화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야생돼지와 인색한 사람, 표범과 불을 연결하는 감각적이며 합리적인 논리가 있다. 표범의 번뜩이는 눈에서 사람들은 불의 반영을 보았고, 그 강한 포식자가 익힌 것이 아니라 날 것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서 인간에게 불을 준 뒤 날고기를 먹는 관대함을 읽어내는 것이다. 무척 축소된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하나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관찰이 필요하다. 표범과 인간, 인간과 불, 표범과 다른 동물들 등등 간의 실제적 관계를 모두 이해하는 것 위에서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작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체의 과학은 관계의 과학이고, 총체의 과학이다.

KakaoTalk_20211214_102121890하나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관찰이 필요하다. 
 
 
logo-01.png
 

 

▶ 배너를 클릭하시면 MVQ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