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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10>낭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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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장금 작성일12-03-30 07:59 조회3,3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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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은 고전공부의 필수… 마음속 응어리 풀어줘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위대한 탄생’ 등 바야흐로 오디션 전성시대다. 주 종목은 당연히 노래와 춤.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가무를 즐기다니 과연 ‘다이내믹 코리아’라 할 만하다. 이 대목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노래와 춤에는 그토록 열광하면서 어째서 낭송의 즐거움은 잊어버린 것일까? 낭송도 소리와 율동이 수반된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몸을 통해 할 수 있는 보편적 표현 형식에 속한다. 헌데, 왜 홀연 사라져버린 것일까?

낭송이란 텍스트를 소리 높여 읽는 것을 의미한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고전은 필수적으로 낭송을 전제로 한다. 하여, 묵독을 통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외국어 공부에도 낭송은 필수다. 심지어 수학, 과학 책들도 한번 소리 높여 읽어보라. 신선한 감동을 맛보게 될 터이니. 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부법이다.

낭송이 지닌 미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장 먼저, 노래와 춤은 호흡이 가빠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할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낭송은 날마다, 장시간씩 지속해도 무방하다. 아니, 낭송이야말로 신체를 단련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소리의 뿌리는 신장에 있고, 신장은 뼈를 만든다.”(‘동의보감’) 그래서 소리 훈련을 하면 신장과 뼈를 단단히 할 수 있다. 거꾸로, 목소리가 흐릿하다는 건 신장과 뼈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철학사의 거장 왕양명은 ‘어린이 교육법’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매일 공부를 할 때에는 먼저 덕을 생각하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글을 암송하며, 그 다음으로 예법을 익히거나 글짓기 등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 다시 암송한 것을 발표한다든지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 시가(詩歌)를 가르치는 이유는 마음의 답답한 응어리를 음악을 통해 풀어주는 데 있다.”(‘전습록’) 시가와 음악 등은 다 낭송을 뜻한다. 요컨대 낭송이란 공부와 신체를 일치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비단 어린이뿐이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가능하다. 아무리 어려운 고전도, 아무리 낯선 고전도 낭송을 통해서라면 거뜬히 접속할 수 있다. 보통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다음에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낭송을 하고 암송을 하다 보면 문득 깨치는 경우도 아주 많다. 만약 이해를 한 다음에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고전을 평생 단 한 번도 독파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공부란 단지 글자의 자구(字句)만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 담긴 우주적 율려(律呂)와 접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솔직히 노랫말은 인간이 쓰는 언어 중에서 지극히 편향적이지 않은가. 그리워하고 애달파하고 미워하고. 그나마 요즘 노래들은 노랫말을 알아듣기도 힘들다. 감정을 과격하게 분출하다 보니 점점 언어가 파열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 언어에만 노출되면 신체적 리듬도 왜곡되기 십상이다. 고전의 언어는 그와 다르다. 존재와 세계에 대한 역동적인 탐구로 가득하다. 따라서 고전을 낭송한다는 건 우리의 몸이 이 원대한 비전과 접속한다는 의미다.

참고로, 낭송 또한 오디션은 물론 페스티벌도 가능하다. 솔로도 듀엣도 밴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로, 낭송은 힘이 세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1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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