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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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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3-02-07 16:49 조회612회 댓글0건

본문

그대 마음이 중생이고 부처입니다

 ―정화 스님이 풀어 쓰신 『전심법요』와 『완릉록』 이야기!
신간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가 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북드라망 독자님들!
작년 봄에 정화 스님의 마음강의였던 『스스로를 존중하는 연습, 마음챙김』을 출간했는데요, 올해도 입춘을 맞이하여 진짜진짜 계묘년 첫 책으로 정화 스님의 신간을 소개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황벽 스님의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풀어 쓰신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입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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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법요』와 『완릉록』이라.... 불교 공부를 다년간 해오신 분이 아니라면, 낯선 이름입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처럼 불교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도 귀에 익은 그런 경전이 아니지요. 이 경전은 중국 당나라 후기에 황벽 희운 스님께서 하신 법문을 모은 책입니다. 중국 하남성(허난성) 출신 관리였던 배휴(裴休)가 종릉(鐘陵) 관찰사로 부임한 뒤 희운 스님을 모시고 들은 설법을 기록한 것이 『전심법요』이고, 이후 또 완릉(宛陵)에서 역시 희운 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들어 기록한 것이 『완릉록』입니다.  

희운 스님은 선승(禪僧)으로 시호가 단제(斷際)라 단제선사로도 불립니다. 황벽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서 황벽 단제선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 불교 선종(禪宗) 5가(家)로 불리는 임제종의 창시자 임제(臨濟) 의현(義玄)이 황벽 스님의 문하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선종도 대개 이 임제종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합니다. 『전심법요』 역시 선의 어록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문은 “배휴의 서문과 희운의 설법, 배휴의 질문에 대한 희운의 대답, 희운의 법어”로 이루어졌는데요,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는 정화 스님께서 풀어 쓰신 책인 만큼 전체 내용을 스님께서 장으로 나누어 풀어 주고 계십니다.    

마음 하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시절인연이 통째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이며 스스로 그러한 일이다. 누구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처럼 보여도 그런 마음은 없다. 몸이 곧 마음인 줄 알면 바깥이 더 이상 마음 밖일 수 없다. 몸속에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줄 알거나 세상 속에 보이지 않는 큰마음이 있다고 여기면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다. 보고 들리는 온갖 차이가 있지만 차이 난 그것에서 보면 그것으로 한 세계. 어떻게 나눌 수 있겠는가. 이곳도 한 세계, 저곳도 한 세계이거늘. 마음 닦는 일을 금강석을 제련해 금을 만드는 일로 비유하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비유에 의해 실상이 가려지고 마니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닦는 것으로 보면 제련하는 것 같지만 마음은 닦았다고 해서 다른 마음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므로. 해서 배휴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이에 대한 황벽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더욱 아득하다. ‘종일토록 밥을 먹지만 한 톨의 밥알도 씹지 않으며, 종일토록 걷지만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다’라는 답이 그것이다. (......) 

이름 붙이는 순간 실상과 멀어지고 잡는 순간 번뇌가 탄생한다. 순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순간에 세상은 탄생되고 소멸된다. 탄생과 소멸이 한순간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일이 없다. 이 또한 그저 그렇다. 어느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말로서만 남아 있다. 이렇게 모인 말들을 지고 있는 것이 중생인 부처이고 그 말에 매이지 않으면 부처인 중생이다. 중생인 부처는 말들을 붙잡고서 제 할 일을 다한다고 하지만, 잡은 듯한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과 같으니 돌아보면 허망한 일이다. 붙잡지 않으면 빠져나갈 일도 없다. 손안에 든 것으로 일상사를 삼는다면, 더욱 세게 손을 움켜쥐겠지만 쓴 힘만큼 아플 뿐이다. 이를 미혹이라고 한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하니 참아내는 인욕이 덤으로 생긴다. 이를 욕계라고 이름한 것일까. 욕망이 인도하는 세계는 필연으로 참아내는 욕됨만큼을 욕망하는 세계가 된 것과 같으니. 일상 사이에 ‘참으세요’라는 표지가 보이지 않는 글씨로 채워진 것은 아닌지. 종일토록 참으면서 일상사와 부딪치는 그런 삶.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 1부 전심법요 가운데 「17. 붙잡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 중에서)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가 어떤 책인지 조금 감이 잡히시나요? 알쏭달쏭한 선어록을 정화 스님의 안내를 따라 독파해 가는 묘미를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참, 모든 책에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인연이 얽혀 있는데요, 이 책에는 조금 더 특별한 아기의 탄생이 엮여 있습니다.^^ 북드라망 2기 인턴이기도 했던 원자연 샘이 바로 이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의 초고를 입력해 주셨는데요(정화 스님의 원고는 모두 마음을 낸 누군가의 손에서 입력된 원고입니다), 글쎄 임신 중이었던 자연 샘이 입력을 마치자마자 아기가 (아직 예정일이 2~3주 남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건강하게 태어났답니다! 태중에서 선어록을 읽은 아기는 어떻게 자랄지, 기대가 됩니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한 선어록 『왜 깨달음은 늘 한박자 늦을까』는 서점에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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