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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스쿨 2학기 5주차 후기
 글쓴이 : 라뇽 | 작성일 : 19-06-10 23:04
조회 : 397  

안녕하세요. 장자스쿨 5주차 후기입니다.

 

[1교시-글쓰기 수업]

2학기 장자스쿨이 벌써 반환점을 돌았네요. 지난 네 번의 수업에 걸쳐 11명 모두가 첫 번째 발표를 마치고, 두 번째 발표가 다시 시작되는 오늘! 여민쌤의 금강경과 붓다, 성준쌤의 전습록과 양명, 정미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카잔차키스까지, 동서양을 횡단하며 살펴본 시대 상황들이 아주 흥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여민, 금강경>

석가모니 사후 불교 종파들은 그 말씀의 해석을 두고 사분오열하게 됩니다. 기존의 아비달마 불교는 지나치게 복잡하며 교리 체계가 매우 논리적이고 치밀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반 대중들이 아닌 전문적인 식자층만이 불교를 배울 자격이 주어진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실제 말씀과 행동 모두 대중과는 결코 유리되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도시에서 탁발하고 수행하셨던 부처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비달마 불교는 부처님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아비달마 불교가 안고 있었던 모순이죠. 이렇게 출가자만의 종교로 제한된 불교를 민중에게 널리 개방하려는 진보적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새로운 불교 운동이 바로 대승불교입니다. 이에 따라 수행의 주체가 특정한 자격의 누군가가 아니라 거리의 모든 민중으로 확장 됩니다. ‘보살과 같은 개념이 이 때 등장하고요. 짧고 간단한 금강경이 바로 대승불교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학적인 기존의 아비달마 불교와는 다른 점이에요.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금강경을 통해 탐구해볼 수 있습니다. 모두들 금강경을 읽어보아요:)

 

*곰쌤 코멘트

대승불교의 역사적 맥락이 잘 정리되었다. 의문점은 왜 아비달마 불교가 그 때 그렇게 번성했을까? 부처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부처님의 말씀과 수행을 이어 받지 않으면서 그의 제자라고 하는 건 모순처럼 보인다. 무아, 무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조건이 있었던 걸까?

당시 불교 종파 간에 벌어졌던 갈등과 분열은 마치 주역의 중천건괘 상효에 나오는 항용유회亢龍有悔에 빗댈 수 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는 상태. 거기서 떨어져 나온 게 대승불교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 금강경을 어떻게 만나고 활용할 것인가? 그 연결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왜 지금 중생들은 금강경이 필요할까? 그런 것을 염두에 둬야 나중에 본문을 구성할 때 현대적 접속이 가능해진다.

 

*후기

제게는 너무나 생소한 금강경! 쏟아져나오는 불교 개념을 들으며 여민쌤이 열어주시는 불교 역사 속으로 빠져듭니다. 금강경을 모두가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여민쌤의 생글생글한 웃음을 보면서, 대관절 금강경이란 무엇인지, 거기에 부처님의 어떤 말씀이 담긴 것인지궁리해보게 됩니다. 또 언젠가 불교와 진하게 만나고 싶은 욕망도 퐁퐁 샘솟아 올라요. 특히 영화 <기생충>과 금강경의 현대적 의미를 연결시킨 곰쌤의 감상도 기억에 남습니다. 화폐와 자아가 완전히 일체화된 현대인들. 단순히 서로 돕고 살자는 식의 공익 광고 슬로건은 이 연결고리를 끊기는커녕 자아의식을 더 강화해버립니다. 금강경의 자아 해체와 대승불교의 공사상이 가장 필요한 시점입니다. 수천 년 전에 쓰인 고전이 품고 있는 현대성이라니, 고전의 깊이는 그야말로 끝이 없네요. 21세기에 다시 마주한 금강경이 여민쌤에 의해 어떻게 해석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한성준, 전습록>

송나라의 주자학은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관학화됩니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하나의 도그마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이제 성인에 이르는 길을 탐구하려는 움직임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오로지 입신양명과 출세, 과거를 위한 공부만 남게 됩니다. 이토록 경전 외우기와 지식 쌓기에 몰두하는 당시의 풍토에서 주자학의 기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주자는 사물의 이치들을 캐다보면 완벽한 하나의 이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리입니다. 천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사물의 이치를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 이치, 즉 원래의 본성을 알게 되면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따라서 경전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겁니다. (이치를) 알아야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우리는 안다고 하는데 왜 행하지 못할까요? 참 간단한 질문 같지만 이것이야말로 주자학이 풀지 못한 격물의 미스테리였습니다.

주자의 격물치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방법을 내놓은 이가 바로 양명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본성 자체가 성인이 되기에 이미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내 스스로가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인데 마음 밖에서 이치를 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죠. 나의 마음이 곧 이치. 내가 마주한 상황 속에서 바름(이치)을 찾으면 그것이 치양지이고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따라서 선지후행, 알고 나서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앎은 실행을 통해, 또 실행은 앎을 통해 완성됩니다. 앎과 행함은 처음부터 하나입니다. 양명이 말하는 앎이란 행함과 결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양명학은 주자학에 끼어들 틈이 없었던 일반 민중들에게 새로운 유학의 길을 제시합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 위에서 자신의 이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양명의 말을 적용해보면, 백성들은 지식계층에 의해 계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의 주체가 됩니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나눠주길 멈추지 않았던 양명의 생애와 그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양명학이 말하는 성인지도를 알게 됩니다.

 

*곰쌤 코멘트

양명학은 한 번도 제도권에서 인정받은 적이 없으나, 후대에 끼친 문화적인 영향력은 엄청나다. 양명 스스로 나는 광야다라고 설파했던 게 정말 이루어진 셈. 거리의 철학자로 민중과 함께한 그 제자들의 일대기도 정말 감동적이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다이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양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양명학이 불교와 뭐가 다르냐고 한다. 양명의 전생이 대스님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양명학과 불교는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불교의 개념을 주자학과 섞어서 대중화시킨 것.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거리의 모든 이가 부처다.” 각자의 삶을 사는데 부처가 된다? 뭘까, 이게? “모두가 성인이다.” 이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의 차이밖에 없다는 것. 알면 그 사람은 성인의 삶을 사는 무엇이 된다. 모르기 때문에 안 믿는 것. 이치 하나만 알게 되면, 알고 받아들이면 부처가 되고 성인이 된다. 결국 한 끗 차이다.

모든 사람이 잠재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양명. 사물을 많이 알게 되고 어떤 지식을 쌓아야만 성인이 된다? 이건 스펙이 좋은데 깨닫기까지 했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백날 해봤자 안 된다. 자아, 즉 아상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치 하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여기에 달려있다.

 

*후기

대한민국 양명학의 No.3, 성준쌤의 발표는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유학의 역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습니다. 암기과목인지라 훈고학, 성리학, 고증학, 양명학 등 유학의 여러 변신들을 시대별로 냅다 들이팠었죠. 양명의 생애와 함께, 또 당시 명나라의 시대적 맥락 위에 얹어진 양명학은 교과서 속의 서술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제게 다가옵니다. 특히 첫 번째 발표였던 여민쌤의 대승불교 발전과정과 흡사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대승불교가 대중과 유리된 아비달마 불교의 모순에 반발하여 탄생했다면, 양명학 역시 기존 주자학의 지나친 관학화와 독단성에 반기를 들며 출발한 것이죠. 남녀와 노소, 학력과 배경을 막론하고, 각계각층의 학인들이 와서 공부하고 탐구하는 대중지성이야말로 이 대승불교, 양명학의 정신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지행합일의 개념은 매번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벅차오릅니다. 이런 귀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돌무덤에 스스로 누워 자신이 품은 죽음이라는 궁극의 질문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양명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 전습록의 이 간단한 가르침은 어찌나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지요.

 

<한정미, 그리스인 조르바>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의 병환 소식 때문에 전쟁 같은 2주를 보냈어요. 그리고 다시금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여다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조르바는 두목에게 도대체 죽음이 뭐냐고 묻습니다. 두목은 인간이란 거대한 나무의 줄기 끝에 달린 잎사귀 가장자리에 선 조그만 벌레에 불과하다고 말하죠. 벌레가 위를 바라보게 되면 신을 갈구하며 종교에 매달리게 되는 거고, 아래를 바라보게 되면 아득한 카오스만을 응시하게 되는 겁니다. 두목의 설명에 조르바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나는 매일매일 죽음을 보고 있으니, 그런 게 죽음이라면 괜찮다고.

이번 사건으로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살면서 겪게되는 고통과 두려움, 그 이후의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정말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조르바 속의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동안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문제였는데, 죽음을 앞두고 일상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 또 일상 속에서 변화하는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그리스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카잔차키스를 보면서요.

누구나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삶을 삽니다. 하지만 조르바는 결코 죽음에게 쉽게 자신의 생명을 내주지 않으리라고 일갈하죠. 여태껏 읽은 조르바의 멋져 보이는 문장들을 넘어 일상 속에서 공부하고 철학한다는 게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그저 멋진 이미지와 훌륭한 문장들에 꽂혔다면, 이제는 정말 책 속의 캐릭터, 작가 모두와 교류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곰쌤 코멘트

조르바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봤을까? 그 과정에서 생명은 왜 죽을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 탐구를 놓지 않았다는 게 그들이 죽음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죽음을 일상적으로 겪는 전쟁 상황 속에 놓여있지 않아서, 가족의 갑작스러운 소식이 우리를 정말 당황하게 만든다. 사실 죽음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현대인에게 주어져 있는데도, 안 한다. 그저 죽음을 어떤 멋진 이미지로 받아들이거나 포장한다. 그게 실전에서는 전혀 적용이 안 된다. 20세기 초 지중해에서 살아가는 카잔차키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가 단순히 멋진 말을 구사한 사람이 아니었고, 당시 그리스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죽음에 대한 성찰과 철학을 했다는 것. 이런 역사적 단서를 이번 기회를 통해 잡은 게 보인다.

내 옆에 죽음을 항상 끼고 다니는 상황. 그래서 항상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속에서 나온 성찰과 죽음을 생각하는 힘이 사람을 살린다. 그게 안 되면 맹목적인 공포에 질려 산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카잔차키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맥락 위에서 그의 언어가 나오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후기

정미쌤께서 최근의 주역 시험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이셨기에, 장자스쿨의 학인들은 도약정미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발표에서 또 한 번 정미쌤의 도약을 보았네요.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는 정미쌤의 모습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귀한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삶, 조금씩 소멸해가는 삶이기에 죽음에 대한 탐구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전에서 이 죽음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해 바로 이것이다!라는 정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화두를 절대 잊지 않고 계속 노려볼 수 있는 힘, 그 힘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비록 저는 다른 고전을 읽고 있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정말 최고 중에서도 최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조르바의 발랄하고 자유로운 신체 속에는 이토록 무겁지만 근원적인 탐구까지 전부 깃들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조르바와 찐하게 소통할 정미쌤의 모습이 그려져요. 파이팅입니다. :)

 

*사족

두 번째 발표는 전반적으로 나아졌다고 곰쌤이 평을 내리셨네요. 이게 바로 절차탁마의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지만(?) 발표하고, 조별 토론을 거치고, 계속 조탁하는 과정을 통해 글이 나오는 걸 경험합니다. 하면 할수록 됩니다’. 그게 돼요. 2학기 때도 함께 토론하고 글을 써나갈 모든 과정들이 기대됩니다.

 

[2교시-주역]

저녁을 먹기 전에 25. 천뢰무망 괘와 26. 산천대축 괘를 시험 쳤습니다. 지난주에 무려 여덟 괘 시험을 쳤던 우리에게 두 괘 시험은 이제 식은 죽 먹기 아닐까욥? ㅎㅎ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주역을 직접 강의하는 시간입니다. 오창희 선생님의 삼엄한(?) 감시의 눈길 하에 각자 준비해온 주역 발표를 했습니다.

 

17. 택뢰수: 이여민

18. 산풍고: 송형진

19. 지택림: 윤순식

20. 풍지관: 강지윤

21. 화뢰서합: 고혜경

22. 산화비: 한승희

 

스스로 준비해서 강의하는 괘는 더욱 기억에 잘 남는다죠. 직접 칠판에 괘를 적고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어렵고 난해한 것처럼 보였던 주역이 성큼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느낍니다. 저는 매일의 출퇴근 시간을 주역 쓰기로 채워나가는데, 주역은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어요. 아마 장자스쿨 학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 주역 강의를 하면서 괘를 풀이해나갈 때, 각자의 성격과 신체가 그대로 엿보여서 그 나름의 재미가 대단합니다. 나긋나긋 여유로운 여민쌤, 유쾌하고 부드러운 형진쌤, 치밀하고 열정적인 순식쌤, 유연하고 재미가 넘치는 지윤쌤, 우아하고 귀족적인 혜경쌤, 유창하고 막힘이 없는 승희쌤까지~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이상으로 5주차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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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도약?정미^^   2019-06-15 22:05:20
답변 삭제  
찬영샘~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찬영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네요^^
장자스쿨에 대한 샘의 애정 가득한 후기에
제가 더 감동이네요. !^^
한수리   2019-06-13 00:31:31
답변  
우와 정말 정성스러운 후기네요!
제가 발표한 것 보다 더 잘 정리된 것 같아요 ㅎㅎ
찬영샘 잘 읽었습니다~^^
오우   2019-06-12 14:56:50
답변 삭제  
찬염샘의 특별 후기가 덧붙여진 글들이 참 생생합니다.
오후 나른한 진료 시간에 읽으니 '주역'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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