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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발제_3주차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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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담상 작성일20-08-23 16:56 조회1,2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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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발제입니다~

90년생을 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은 사실 제목부터가 좀 낯설다. 이전에는 한 번도 내가 속한 세대를 설명하려고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나 역시 90년생으로서 어떤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을 텐데, 모른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타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우리 또래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러 현장에서 다른 세대와 부딪치면서 비로소 90년생은 새롭게 정의될 필요성을 얻은 것이다. 먼저 취업 전선에 돌입한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책의 저자는 반대로 상사의 입장에서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이해하지 못해 곤혹스러워 한다. 이 부딪치는 관계 위에서 90년생에 대해 말해 볼 기회가 생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자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간단한, 또는 헛헛한

90년생의 첫 번째 키워드는 간단함이다. 온갖 말들을 줄여서 사용한다거나, 긴 글을 볼 때도 전부 다 읽지 않고 부분적으로 빠르게 읽고 넘어가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SNS를 훑어볼 땐 절대 모든 포스팅을 꼼꼼히 다 읽지 않고, 요샌 드라마도 짧게 추려진 요약본으로 찾아본다. 하나를 진득이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이를 많은 정보들 필요한 것만을 가장 효율적으로 찾기 위한 나름대로의 적응 방식으로 본다. 그렇다 보니 빠르고 유연하게 문서를 이동하지만, 집중하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마치 나름의 장단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론 뭔가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대체 왜 많은 정보들을 빠르게 탐색해야만 했을까?

 

또한 우리는 모바일을 통해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되는 생태계에 놓이게 되었다. 항상 누군가와 연락이 가능한 상태가 되면서, 항상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게 되었다. 이는 잠시라도 연결이 끊기는 것을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라도 모바일의 배터리가 없거나 잔여 데이터가 떨어지면 안절부절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p.90)

 

간단한 정보에 대한 빠른 접속은, 그 정보의 내용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도 접속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우리는 습득하는 정보의 내용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정보를 습득하며 느끼는 항상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별 내용 없는 메시지들이지만, 내가 마치 인싸가 된 것처럼 느껴지게 해 주는 카톡방이라던가. 굳이 밖에 나가 어렵게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편히 누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경제적이라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간단한 접속은 정말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새롭게 등장한 수많은 줄임말의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간단하게 이루어진 접속은 정말 간단하게 사라진다. 아무리 카톡을 즐겁게 주고받는 사이라도, 실제로 사소한 부탁 하나를 하기도 받기도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분명 다른 누군가와 접속하고 관계 맺고 즐겁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왠지 모르게 헛헛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정보가 너무 많아진 탓이라고 하면 좀 위로는 된다. 새로운 세대들에겐 지반이 없었고, 넘쳐 나는 정보들 속에서 어떤 가치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 납득은 가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 모든 것들에 대해 냉소적이게 된 것이 단순히 정보가 많이 주어졌기 때문일까? 반대로 우리는 너무나도 강력한 하나의 의미만을 찾다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냉소적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게 필요한 정보만을 찾아보고, ‘를 빛나게 해줄 관계만을 찾는 것. 우리의 간단한 접속은 이 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이루어지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헛헛함을 가져다준다.

긴 문서에 집중하지 못하는 특징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단점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를 열어 다른 무엇과 접속시키는 것은 결코 간단하게는 되지 않는 일이다. 간단한 접속에 익숙해진 신체에게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건 불편하고 성가신, “심지어는 멍청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한 접속에서 일어나는 헛헛함과 불안함을 집중으로 몰아낼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한 권의 책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접속의 즐거움은 찾아올 것이다.

 

불평을 키우는 정직함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키워드는 정직함이었다.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학력, 취업 비리를 두고 분노하지 않는 90년생은 없다. 으레 했던 일들이라고 무마하려는 이전 세대를 꼰대라는 말로 비난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판을 마련한다. 물론 이것도 인터넷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의 장에서는 상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장을 통해 한편으로 상사들에게 불만을 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의 입사 기준 또한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는 이상, 회사에서도 폐쇄적인 방식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치열한 입사 경쟁에서 평가를 받기만 했던 구직자들이 면접한 회사를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앞과 같은 책, p.119)

하지만 부당한 일을 두고 일어나는 분노를 마냥 좋게 들리는 정직함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앞과 같은 책, p.110)

 

저자는 90년생의 정직함이 이전과 다른 건 그 덕목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대해서 적용된다는 것을 말한다. 부당한 일에 대한 분노는 보통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잣대다. 그런 잣대가 아주 완전무결한 정직함이라면? 어딜 가든 불평밖에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회 통념상 문제될 것이 없고 아무 의미 없는 표현이나 현상을 과대해석하거나 왜곡할 목적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프로 불편러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회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불평만을 쏟아내는 것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부당하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 이것이 그저 어디에도 없는 정직함을 충족시키려는 것인지 아닌지는 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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