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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문장이란 무엇인가" 후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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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은희 작성일15-03-21 20:01 조회2,8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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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스쿨 4주차 후기

문장이란 무엇인가?-연암 박지원

    

명랑함으로 병을 이기다.

연암은 권력 핵심부인 노론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렴한 집인지라 집안은 가난했으나, 정계로 나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집안이였다. 당연히 과거를 통해 정계에 나가는 것이 코스였으리라. 그러나 연암은 17~18세에 우울증을 앓는다. 이유는 모른다. 식욕이 없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하였다. 보통은 의원을 찾아가는 것이 방법일 텐데, 연암은 저자 거리의 우스개 소리와 노래,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병을 치유하고자 했다.

그때 만난 것이 ‘민옹’이라는 선비이다. ‘민옹’과의 만남은 후에 ‘민옹전’으로 남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민옹은 연암의 불면증과 식욕 없음을 한순간에 명랑함으로 바꾸어버린다. ‘잠이 아니오니 하루를 길게 살 수 있고, 식욕이 없으니 집안의 곡식이 남아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연암은 자신의 우울함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민옹에게 반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여 그와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하였다. 연암은 민옹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병을 치유할 방법은 자신의 현실을 다르게 보며, 명랑함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기획함에 있음을 배웠을 것이다.

이 명랑함이 우울을 이기는 방법임을, 또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명랑함은 연암에게 중요한 감각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후 연암은 우스개 소리로 세상을 희롱하며, 자신의 삶을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한다.

 

친구와 함께, 제도 밖으로.

연암은 꿈이 능지기였다 한다. 능을 지키는 일을 하며, 때때로 공부하고 글을 지으며 자신의 삶을 소일하고 싶어했다. 하여 연암은 50이 넘어서야 생계때문에, 겨우 현감으로 관직에 복무하게 된다.

연암은 지금의 수능입시보다 몇 배나 어려운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것 보다는 친구들과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갔다. 홍대용, 정철조, 서상수,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이서구 등 우리가 실학파라는 분류로 한번쯤은 외워봤던 이들이 연암의 아내보다 소중한 친구들이다. 31살에 이른 연암은 백탑(파고다 공원의 원각사지 10층석탑) 근처에 살며 이 친구들과 매일 만나고 같이 다니며, 글을 쓰고 고담준론을 나누며 술을 마시며 지낸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며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였던 이들은 과거라는 제도에 등 돌리고 제도의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였다.

과거를 통해서 연암은 무한 경쟁과 허울 뿐인 지식의 습득의 본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과거장에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연암은 그림을 그린다든지, 빈 시험지를 내고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때 이미 연암의 문장은 서울 안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며, 이런 연암에 대한 정가의 기대는 컸던 때였다. 물론 연암의 친구들도 장안에 이름이 난 과학자, 천문지리학자, 음악가, 발명가, 시인이자 개혁가였다.

이들은 제도 안에서 자신들의 학문을 펼치기는 무언가 무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혹은 정계에 나아가는 것으로 자신들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학문하고 글을 짓는 즐거움을 나누며,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가 있는 삶들이면 이들에게는 충분히 족했던 것일까? 정계에 나아가 부와 명예를 손에 쥐기보다는 내 마음껏 살고, 내 뜻대로 사는 삶을, 즉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이들! 이들은 서로간의 우정이 있기에 자유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지식인 공동체를 만들고 살아간 것일 테다. 정규직으로 나아갈 실력과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자발적으로 그 관문을 걷어차고 자유와 지식의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간 연암과 친구들. 이들의 삶의 모습들과 남아있는 글들이 지금도 우리에게 가슴 뛰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뜻은 글자 너머에 있다.

연암은 새로운 문장을 지으면, 친구들을 불러 술상을 차리고 젊은이로 하여금 낭랑하게 읽게 하고 글에 대한 평이나 감상을 듣곤 했다 한다. 이 장면이 마치 눈앞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연암과 친구들의 ‘우정’은 자유로운 삶을 향한 동력이였을 것이고, 이 동력은 서로의 글을 통해서 더욱 앞으로 진전되어 나갔을 것이다. 이들 지식인 공동체에서 문장은 참으로 중요한 소통의 도구였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을 줄 수 있고, 새로운 사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였을 테니 말이다.

연암은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또한 글쓰기를 하는 것이 글자만을 읽고, 고스란히 모방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죽은 글이라고. 책을 읽되 글자 너머의 뜻을 읽고, 그 정신을 발견하여 자기만의 표현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소위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라고 말한다.

자연과 사물 속에 펼쳐진 진실한 기운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잡아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지으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의 들창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리알이 투명하게 비어 있지 않으면 정기를 모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연과 사물의 진실한 기운과 통하고 싶다면, 비어있는 부분이 있어야하며 그래야 현묘한 그 경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만의 모방하지 않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알려준다. 연암의 문장이 알려주는 이 비법들을 어떤 뛰어난 문장가니까 할 수 있었던 거야라고만 생각지 말고, 우리도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볼 일이다.^^

 

후기를 마치며

책을 읽으며 내 안을 무언가로 채우기는 쉽지만, 비워보지는 못했던 내게 연암의 이야기는 비법 중에 비법으로 들린다. 항상 텍스트를 대할 때 내가 기존에 가진 생각을 굳건히 하고 책장을 넘기고 있기 때문였을까... 잘 이해하려고 달려드는 순간이 자신으로 가득 채우고 텍스트를 만나는 순간은 아니였던가 싶다.

오히려 연암이 제시하는 ‘명랑함’으로 텍스트를 만난다면, 그 만남을 통해 새로운 그 어떤 것을 기획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명랑함은 시작하는 기운이며, 기획력을 가진 기운임을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더불어 기획은 반드시 끝을 함께한다는 것임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연암의 문장을 통해서 연암의 ‘명랑함’과 ‘우정’ 그리고 ‘법고창신’을 생생하게 배웠으니, 올해는 대복을 받은 해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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