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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에세이후기-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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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2 작성일16-05-02 09:08 조회2,4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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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글쓰기가 ‘자유로운 삶의 시작’이라면 나를 구속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글쓰기가 나에게 자유를 주는가. 자유가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 자유가 무엇인지 루쉰이든 소세끼든 누구에게서든 찾아내야 한다. 찾아냈다면 나는 거기에 동의하는가? 묻고 그것에 대해 써야 한다. 이 에세이는 자신이 썼지만 자신의 글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당위만 있다. 그러면 이건 도덕이 될 뿐 이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글쓰기에서 내가 자유를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가? 자유가 되려면 매순간 모든 것이 깨져나가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 중요한건 솔직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

도련님을 쓴 나쓰메 소세끼처럼 나도 나와 주변을 불편하게 하고, 또 깨우침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가? 그러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것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글쓰기가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는가 물어봐라”

아주 미미하지만 그런 순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미한 것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그럴듯한 걸 찾아 헤매다가 이도저도 아닌 글이 되었다. 처음부터 바닥부터 다시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순간순간 구체적 현장에서 아무생각 없이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잡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오헌미

나는 왜 글을 쓰는가? 1학기 에세이의 제목은 나에게 너무 크고 어려운 질문이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 이제 겨우 책의 재미를 느끼려고 하는 내게 그만 아장아장 걷고 파워 워킹을 요구하는 엄격한 조교의 주문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에게 매일매일 다가오는 문장들, 사람들, 사건들은 나에게 다 미세한 파장들을 불러 일으켰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야 되는 것들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다 연결되어 있다. 이건 또 다른 진지함이다. 그럼,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도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질문이다. 생각했고 또 생각했다. 에세이를 다 쓰고 발표도 다 끝났다. 사실 길샘께서 공부하라고 하신 말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진솔한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잘못하면 내안에 내가 갇히게 될까봐 내 글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다. 이옥도, 루쉰도, 나스메 소세키도 자신들의 언어로 글을 썼다. 길샘 말씀 데로 글은 그 사람이다.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 어렵고 부러운 일이다.

 

고은미

에세이 발표를 하고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단하게 요약해봅니다.

1.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공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폭력이라는 어떤 이미지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2. 글을 쓸 때 개념어를 많이 쓰는데 초등학생도 읽기 쉽게 글을 쓰라는 조언도 있었다.

3. 자세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글을 공감하기 어렵다.

4. 너무 감정을 억압하여 극복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라.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기억이 잘 안 나서)

5.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로 적극적으로 살아라.

       

이유진

주류도 아니라고 적당히 글쓰기를 하고 막 쓰면 안 된다. 글에 욕심을 내야 한다. 문제의식이 나이브해져서 안 된다. 글쓰기의 문제가 뭘까를 고민해야 한다. 다수에서 소수로 간다는 것은 다수에서의 마음가짐을 다수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인 것 같다. 굳이 소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소수자인 것 그 자체로 인정을 하고서 그것 인체로 사는 거다.

아Q의 혁명은 노예가 주인이 되는 혁명이다. 나에게 무조건 일상의 혁명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끌려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글쓰기를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면 주인의식이라는 것을 글쓰기를 하면서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혁명해야 돼!’ 그건 너무 크다. 글쓰기가 몸과 마음에 붙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해봐야 하는데 자꾸 반성적 글쓰기, 교화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내가 능동적으로 넘어가는 가를 확인해야 된다.

 

양서영

“정돈되지 않은 글이다. 글의 시작과 끝을 매듭지어야 한다. 독백같은 글이다.”라는 평을 들었다. 나름대로 정돈시키려고 애썼는데 전혀 정돈되지 않은 글이라 해서 실망했다.^^ 어떻게 해야 정돈시킬 수 있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한다고 했는데 끝까지 생각을 안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유진샘의 질문에서 내가 생각하는 ‘글’의 정의를 정리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벼운 글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분명히 그 부분에서 뭔가 마음에 와닿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꼼꼼하게 정리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주제가 생소해서 이 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하나의 줄기를 잡지 못하고 이것저것을 막 섞어버린 것 같다. 다음에는 글을 쓸 때 한 가지만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나름 오래 생각하고 나름의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에세이 발표가 끝나고 나니 내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답을 여전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쓰고 있지도 않고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것부터 정리를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그 생각을 하다가 글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데 생각이 닿아서 그 얘기를 썼는데 먼저 정리를 했어야 했던 것 같다.

나를 오픈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질문들에 대답을 하다 보니 내가 진짜 오픈하고 싶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왔다 갔다 하는 상태인 것 같다. 요즘 평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뭔가를 건드려서 혼란스러워지는 게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고 네가 사랑하면 되지 않냐는 말에는 그게 잘 안 된다니까요 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내가 그런 줄 알고 안 그러려고 오래전부터 노력중이고 많이 바뀐 거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면 되지 않냐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내가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속에는 내가 남을 잘 사랑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정말 이런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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