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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학기 2주차(2/21)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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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당신뜻대로 작성일23-02-23 22:45 조회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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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1학기 2주차 강의와 세미나 후기를 전합니다. 

 

오전 시간은 이수영 선생님의 스피노자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됐습니다. 지난 시간에 1부 정의와 공리를 끝낸 데 이어 이번 시간에는 1부 정리 9번까지 진도가 나갔는데요. 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정리 1.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변용에 앞선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다(정의 5). 실체가 변용된 것이 양태이므로 실체는 양태보다 앞서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양태 이전에 실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정리 2. 서로 다른 속성을 소유하는 두 실체는 서로 간에 공통되는 어떤 것도 갖지 않는다: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다(정의 4). 속성이 다르다는 것은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고, 본질이 다르다는 것은 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속성이 다르다=공통성이 없다). 실체는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고 자신을 통해서 파악되어야 한다(정의 3). 그러므로 한 실체의 개념은 다른 실체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실체가 두 개 있다면, 그 둘은 속성이 다르고, 따라서 공통성이 없다. 공통성이 없는 것은 서로 인식될 수 없고(공리 5)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정리 3.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물들은 그것들 중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실체 사이의 인과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각각의 실체는 스스로 존재한다.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속성이 다르다면 공통성이 없고, 공통성이 없으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서로 공통성이 없고 아무 관계가 없는 실체가 무한히 존재할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다. 증명이 중요하다. "사물들 상호 간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면 그것들은 공리 5에 의해 서로 인식될 수 없고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공통성이 없으면 인과 관계가 없다. 실체는 자기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체가 무한히 많더라도, 실체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없다.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은 공통성 찾기다(ex.실체와 양태 간의 공통성).

정리 4. 서로 다른 둘 또는 다수의 사물은 실체의 여러 가지 속성에 의해서 또는 실체의 여러 가지 변용에 의해서 구분된다: 사물을 구별하는 방식에 대한 것으로, 1부의 핵심적인 정리다. 사물들은 실체의 속성에 의해서 구별되거나 실체의 변용에 의해서 구별된다. 속성에 의한 구별을 실재적(real) 구별이라고 하고 변용에 의한 구별을 양태적(modal) 구별이라고 한다. 양태적 구별의 핵심은 수적 구별이다. 실재적 구별은 수를 셀 수 없다. 양태의 갯수를 세다가 그 구별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속성으로 구별하게 된다. 실재적 구별은 타자와의 차이가 아닌, 스스로 차이를 내는 지점에서의 구별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장 속성과 사유 속성은 서로 아무런 관련 없이 자체적으로 존재한다. 타자를 전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실재적 구별이다. (*증명의 '지성을 제외하고는'에서의 지성은 인간의 분별력이 아니라 신의 사유 능력을 말한다.)

정리 5. 자연 안에는 동일한 본성이나 속성을 가진 둘 또는 다수의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동일한 속성의 두 실체는 없다', '두 실체가 있다면 그 둘은 속성이 다르다', '속성이 같다면 두 실체는 하나다' 등의 평이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 실체는 속성의 차이에 의해 구별된다. 그러므로 양태적 구별이 아니라 실재적 구별 방식을 써야 한다. 속성이 같다는 것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실체가 하나라는 뜻이다. 하나의 속성을 공유하는 복수의 실체는 없다.

정리 6. 하나의 실체는 다른 실체에서 산출될 수 없다: 한 실체는 다른 실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실체는 다른 실체로부터 나올 수 없다: 다른 것에서 산출된다면 그것은 실체가 아니고, 다른 실체의 영향을 받는다면 실체가 아니라 양태다.

정리 7. 실체의 본성에는 존재가 속한다: 실체는 다른 것에서 산출될 수 없다. 즉, 실체는 자기 원인이다. 자기 원인은 본질이 존재를 포함한다.

정리 8. 모든 실체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실체는 다른 실체가 영향을 줄 수 없다. 실체가 아무리 많더라도 모든 실체는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정의 2). 동일 속성의 실체는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 속성의 실체는 하나밖에 없고, 그 실체에 영향을 주는 다른 실체가 없으므로 실체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다. 즉, 자기 원인이므로 본성에 존재가 속하게 된다. 따라서 실체는 유한하거나 무한하게 되는데, 유한할 수는 없다. 동일 본성에 의해 제한 받는다는 것은 공통된 속성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실체가 아니라 양태라는 뜻이다. 유한하다는 것은 존재의 부분적 부정이고 무한하다는 것은 그런 존재의 절대적 긍정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은 존재의 부정에서 존재의 긍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실체는 절대적 긍정이다. 양태 수준에서 양태의 관점으로 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실체의 본질은 속성인데 실체는 다른 실체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실체는 실체인 한 무한하다. 실체의 본질이 무한한 것처럼 존재도 영원하다.

정리 9. 사물이 더 많은 실재성이나 유를 소유하면 할수록 더 많은 속성이 귀속된다: 실재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이거나 유가 많다는 것은 속성이 많다는 것이다.

 

곧바로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모두 잠시 침묵했습니다. 실체와 속성, 양태 개념만으로 이렇게 복잡한 논의가 전개되다니요.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을 토로하고, 강의 때 들은 내용을 요약해 보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었습니다.

실재적 구별과 양태적 구별을 잘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성들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신의 변용이 양태다, 실체는 양태의 원인이다 등 각자 메모했던 것을 나누다가 다시 정의, 정리부터 짚어가야 했습니다. 연장 속성과 사유 속성만을 가진 인간이 신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속성 하나하나가 다 무한하다. 하나의 속성으로도 신을 알 수 있다.) 실체는 물질인가? (물질은 공간을 점유하므로 외부가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오전 시간 스피노자의 신과 오후 토머스 머튼의 하느님이 너무 상반되는 것 아닌가? (토머스 머튼의 신을 근원적 실재로 보면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등의 질문이 기억납니다.

 

오후의 『토머스 머튼의 시간』 세미나에서는 1부와 2부를 다루었습니다. 1부 '부르심을 받다'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를 다루었는데, 성소를 느낀 머튼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할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기입니다. 발제자는 신의 현존을 느낀 사례가 있는지, 스피노자의 신과 토머스 머튼의 하느님은 어떻게 다른지 질문했습니다. 신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은 신비 체험, 신과의 합일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실천'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스피노자의 신과 토머스 머튼의 하느님을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그 두 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다음에 토론하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 머튼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게 된 과정, 글쓰기를 수행의 도구로 삼은 것, 평화와 무사함의 차이 등에 대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2부 '수도자이면서 작가가 되다'는 머튼이 「칠층산」을 출판하고 사제 수품을 받은 기간의 일기가 주를 이룹니다. 발제자는 머튼이 글쓰는 소명과 수도자가 되고자 하는 갈망을 통합하는 과정에 대한 질문과 전례의 온도 차이(ex. 개신교의 부흥회와 가톨릭의 미사)에 대한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머튼은 '근원적 존재를 향한 발원'이 있었기에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잘 통합했다고 합니다. 전례의 온도에 관해서는,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절제와 침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핵심 요점만 정리하려고 했는데 아는 게 없다 보니까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다음 주에는 부디 뭐라도 좀 이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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