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논문 쓰기-서론 >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화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화성.png

소논문 쓰기-서론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u 작성일19-11-11 21:40 조회1,015회 댓글0건

본문

감이당 화성 / 4학기 소논문 쓰기_ 서론 / 2019. 11. 11 / 오정아

 

매 순간을 고귀하게 산다는 것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

이 말은 내게 공기와도 같았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저 몸 안에 깊이 각인되어 그대로 살 뿐이었다. 생활 속에서도 이 말이 사실임은 수시로 증명되는 듯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성적이 좋았고, 사회에서는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깨어 있던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연결시키고 싶어 부지런히 준비하자 내가 바라던 대로 되었다.

주변의 예나 개인적인 경험은 내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고, 그러면서 이 말은 내게 진리가 되었다. 그런데 인생의 말년을 향해가는 시점에, ‘안정적인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진리는 나를 배신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뭔가 싶으면서 배신감이 느껴졌다. 길을 잃은 듯 막막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답을 찾는 과정에서 감이당과 인연이 닿아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 생각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들 대부분이 내 생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니체를 공부하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니체라는 렌즈를 통해 내가 처한 상황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저 전제를 다시 찬찬히 따져보고 싶어졌다.

먼저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게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지금 희생을 치르면서 달려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는 일이었고, 방해가 되거나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생활의 기본이 되는 식사나 수면, 최소한의 운동, 집안일 등도 사소하게 여겼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이루는 일만이 가치 있었으므로 성과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과정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과정이 아무리 즐거웠다 해도 중요하지 않았다.

니체는 이런 것을 비천한 자의 특성으로 규정한다. “말짱한 정신으로 자신의 이득을 주시하고 내면의 어떤 충동보다 목적과 이득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다는 것. 따라서 합목적적이지 않은 행동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것이 그들의 지혜이자 자아감정이다.”(즐거운 학문, 71) 또한 노예와 주인을 가르는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를 가치의 창조로 보았다. 고귀한 자는 스스로를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끼는 반면 비천한 자는 가치를 스스로 설정하는 데 전혀 익숙하지 못하며, 그들의 주인이 그에게 부여한 것 이상의 어떤 다른 가치도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못했다.”(선악의 저편, 280)

나 역시 내가 창조한 가치가 아닌 자본주의의 가치를 내 것인 양 맹목적으로 따랐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가치이다. 성과와 결과만을 중시하는 이 가치를 따르다 보면 시선은 늘 미래에 가 있으므로 현재의 과정은 무시된다. 미래에 완성될 무언가와 비교하면 현재는 늘 결핍의 상태이므로 현재는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 찬다. 따라서 그 고통을 덜어줄 동정, 도움을 주는 호의적인 손, 따뜻한 마음, 인내, 근면, 겸손, 친절을 갈구한다(선악의 저편, 278). 이것이 바로 니체가 비판하는 비천한 자, 노예가 살아가는 모습이자 내가 살아온 모습이다.

그들과 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안정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내가 진리라고 믿었던 전제의 좋은 결과중 하나도 바로 안정이었다. 여기서 안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불편함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는 것이 가능한가? 니체에 따르면 불가능하다. “이 세계의 전체적인 특성은 카오스이며, 생명의 본질은 가장 부드럽게 말한다 해도 착취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약한 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고, 침해하고 억압하고 냉혹할 뿐 아니라 자신의 형식을 강요하고 동화시킨다.(선악의 저편, 273) 자연의 모든 것은 이러한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계속 움직이며 생성과 변화를 거듭한다. 그러므로 안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며,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니체의 개념들을 통해 간단히만 살펴봐도 내가 진리라고 믿었던 전제와 그것을 체화한 채 살아온 내 모습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나는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목표로 삼는가 하면, 늘 미래의 결과와 성과를 바라보며 현재의 삶을 하찮게 여겼고 긍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부를 하면서도 과정보다는 자꾸 결과물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이번 소논문에서는 니체가 말한 생명의 본질, 세계의 필연성, 인과, 자유의지고귀함과 비천함, 긍정과 부정 등의 개념들을 따라가며 내 오랜 습관의 배후인 전제를 다르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