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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4학기 1주차 고미숙샘 강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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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달무리 작성일19-10-19 13:38 조회1,7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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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4학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두둥! 방학이 한 주뿐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더운 여름, 유독 힘들었던 3학기를 보내며 못 만났던 샘들도 다시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 다시 힘내어 한 학기 공부에 집중해 보아요~

한층 서늘해진 날씨에 죽음을 공부하기 딱 좋은 시간이 왔다는 곰샘의 말씀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왜 죽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죽음을 탐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인간이 태어나면 죽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며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의 현재에 집착하기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 깨닫는다는 것은 이렇게 자명한 것들을 일상에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자명한 이치를 안 받아들이려는 것은 인간의 무지때문이며 이것이 불안과 공포로 나타난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와 함께 죽음과 내일을 발명해 내었으나 죽음에 대한 사유가 성숙하지 못하여, 당장에 누리는 물질적 혜택에만 집착해 생명 자체를 누리지도 못하고 죽음도 생각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장례문화를 통해 죽음을 대면하였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죽음과 대면할 기회 자체를 없애버렸다. 물질과 쾌락만을 쫒다보니 맹목적 충동으로만 작동하는 삶이 되었다. 그에 따라 불안은 더욱 커지고 스스로 죽음을 사유하는 방식이 왜곡되었다.


원죄의식이 있고 없음으로 동·서양 문명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공통점은 죽음을 해석하는 것이 종교와 영성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다. 경쟁과 확장에서 자아와 소멸로 시선을 돌리고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축의 시대 영성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나 붓다가 생사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구도의 길을 갔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착하게 후회없이 사는 것, 나도 이롭고 타인도 이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죽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제도종교에 맡겨버린 형국이다. 인간이 생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것인가를 탐색하신 분들이 현자들인데, 그 본질은 사라지고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제도종교가 독점해 버렸고 죽음의 문제를 제도화해버렸다.


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 몸은 사라지고 온 우주는 부처의 법으로 파동치고 있다. 과학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이러한 파동과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허무,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망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은 분이 부처이며 이러한 깨달음은 불교라는 제도 종교에 가둘 수 없으며 제도 종교로부터 탈영토화해야 한다.

우리 시대 보살의 환생이자 영적 지도자라 알려진 달라이라마가 하는 일은 글쓰기이자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소통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나 예수, 소크라테스가 한 일이다. 죽음을 직면하고서 어떻게 대처할 것이가에 대한 이러한 탐구의 과정이 없으면 죽음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길이 없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죽음을 글로 남기는 묘비명을 쓰는 문화가 있었다. 슬품을 자연스럽게 겪어낼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이다. 연암의 진부하지 않은 비문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현자들이 죽음의 순간을 맞닥드린 자세를 탐구하면서 자신의 진솔한 언어로, 매 순간 새로워지는 생명력으로 글을 쓰도록 한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곰샘 강의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상투적인 진부함을 걷어내고 내 안에서 소화된 나의 언어로 죽음의 문제와 대면하고 글을 쓸 것! 큰 과제를 안고 4학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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