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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2학기 도덕의 계보학 2강 후기
 글쓴이 : 요기윤 | 작성일 : 19-05-16 01:22
조회 : 301  

도덕의 계보학 2강에서는 1강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좀더 상세히 다루는 시간이 포함되었다.

2강을 듣고 다시 1강 후기를 보니, 1강을 들을 때 알아들은 것이 훨씬 익숙하게 다가왔고, 사실 1강에서 수업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이해한 것은 지금 이해한 내가 볼 때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

별자리에서 반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수자리 이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가는 건지 반복이 중복을 넘어서는 섬세함과 깊이의 폭넓음이라는 걸 일상에서도 늘상 경험중이다.ㅎㅎ;

도덕의 계보에서는 약자의 삶의 방식인 '선과 악', 강자의 삶의 방식인 '좋음과 나쁨' 의 개념을 상식을 넘어서 정립해가는 것이 출발점인 듯 보인다. 내 자신이 강자라고도 약자라고도 이해되면서, 현재는 혹은 그동안 강자의 방식을 추구해온 것이라 믿어주며 수업을 듣고 책을 보고 있다~ >.<

2강에서도 책의 구절과 함께 보충설명이 이어져서, 아래 후기를 정리할 때 책의 내용과 강의 표현을 중심으로 내용을 연결하였다. (수업 중에 참고된 책의 페이지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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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들은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인정하고 직시할 힘이 있다는 면에서, 니체는 그리스신들을 으로 보았다.


좋음이라는 판단은 좋은 것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좋은 인간들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즉 고귀한 사람, 강한 사람, 드높은 사람들, 높은 뜻을 지닌 사람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저급한 사람, 비속한 사람, 천민적인 사람들에 대해 거리의 파토스의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새기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존재적 차이를 말하는 거리는 높이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니체는 탁월한 강자가 갖는 감정을 거리의 파토스라고 하였다(p.353)

선과 악은 약자적 삶의 양식이며, ‘좋음과 나쁨은 강자의 삶의 방식이다.


노예 반란은 약자의 가치가 중심가치가 되는 것이다.

니체가 노예 도덕을 비판할 때,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 외부의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 이것을 생리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고귀한 가치 평가 방식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하는 것과 반대로,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즉 자신의 긍정을 위해 자신의 동력이 되는 대립물이 필요하다.   (p.367)


강자의 감정

출신이 좋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힘이 가득 넘쳐나는, 따라서 필연적으로 능동적인 인간으로, 행복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활동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행복을 염두에 둔 것이다. (p.369)

곧 능동적으로 자기 행위를 스스로 일으키는 자발성에서 행복이 있고, 이것이 바로 자유의 감정인 강자의 감정이다. 강자의 감정은 스스로 행위할 수 있는 것에서 오는 자기 믿음에 기초한다.

약한 자, 행위할 수 없는 자들은 타인을 부정하는 원한 감정으로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부정한다. 이들의 행복은 수동적인 안위, 위안, 안락함, 위생 등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이런 수동성은 자기를 지키는 것으로 외부를 밀어내기 위해 계산적이고 영리해지게 만든다.

반면, 고귀한 인간은 생각하지 않아도(영리해질 필요 없이) 무의식적 본능의 확실성으로 앎은 신체화되어 일부러 머리를 쓰지 않는다. 완전히 신체화되어 의식으로 떠올릴 필요가 없기에 머리를 쓰며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이것은 자기 신뢰와 믿음 속에서 계산하지 않고 부딪힐 수 있는 힘이다. 이렇게 내면에 근본적으로 있는 힘의 의지를 인지하게 된 매 순간마다 바로 수행하기때문에 병들지 않는다는 것은 기억하거나 영리해질 필요가 없는 강자들의 건강법인 것이다.

고귀한 인간에게는 행복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다. 그들의 행복은 행위의 결과가 관련되지 않는다. 니체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행위를 끝까지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행위의 비전을 위해서이지, 목적으로서 결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양심의 가책의 발생적 뿌리는 다르다. ‘양심은 강자의 가치이며, ‘양심의 가책은 약자의 가치이다.

니체는 사회나 개념이 아닌 사람에서 시작했는데, 즉 마음을 보는 것, 생리학(, 충동)을 보는 것, 제도가 아닌 구체적인 것, 삶과 그 밑에서 움직임을 만들고 있는 욕망을 보았다.

양심의 가책은 죄책감, 부채감(빚진 기분), 결핍감과 같은 힘이 없고 부족한 약자의 감정이다. 반면, ‘양심은 약속할 수 있는 존재들의 힘을 말했는데, 이것은 자기 본연의 근본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런 자기 자긍심은 책임과 양심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것으로, 자기 신뢰와 힘이 있는 자들의 가치가 된다. 곧 약속할 수 있는 인간이 자기 신뢰와 자기 긍정이 있는 자들이며, 여기에 책임과 양심이 있다.

 

모든 동물의 능력은 망각하는 능력이다.

피와 고통이 기억하는 힘이며, 이것이 약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주권이란, 힘의 주인으로 의지를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주권적 개인이 곧 자유를 얻는다. 이런 모든 긍정적 힘의 뿌리에는 피와 고통이 있었다. 여기에서 형벌이 나왔다.

형벌은 채권과 채무 관계에서, 채권자(a)가 손해를 입어 생긴 원한 감정의 분노를 채무자(b)에게 고통(형벌)을 주고, 채무자(b)가 고통받는 것으로 채권자(a)는 쾌락과 같은 보상을 얻는다. 또한 채무자(b)는 부채가 해결된다. 채권자(a)해소’, 채무자(b)해방이라는 가치를 얻게 된다. 이로써 형벌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두 묶인 감정과 부채에서 풀려나 축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때 니체는 질문한다. 고통이 형벌로 해방되는 축제의 성격이 있다면, 고통이 곧 슬픔일까?

니체는 우리를 진짜 슬프게 만드는 것은 고통의 무의미라고 한다. 인간은 가치를 세우는 동물이다. “무의미는 가치가 있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니체는 의미가 있다면 죽음()이라도 좋다고 한다. 니체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삶을 의미를 주는 것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며, “삶이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였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우리에게 신을 찾게 만들고, 노예가 되기를 욕망하게 한다. 니체의 질문방식은 우리 스스로 삶이 곧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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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후박   2019-05-16 12:57:33
답변  
내 자신이 강자이기도 하고 약자이기도 하다는
표현에서 멈추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난 약자였나봐 하고 있었네요
한쪽으로 몰아가는 토끼몰이식 사고 방식, 아 벗어나고파요
단순삶   2019-05-16 08:09:42
답변  
일강에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당. 정리를 잘해주셔서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네요. 처음엔 외계어 같던 니체의 글이 조금씩 와닿습니다.
정명희   2019-05-16 07:59:11
답변  
늦은 밤까지 고생하셨네요^^
쌤~ 의미가 있다면 죽음이라도 좋다고 하는 걸 니체가 비판한거죠?

꼼꼼하게 해주셔서 복습이 됩니다.
     
요기윤   2019-05-18 21:01:45
답변 삭제  
네. 제2논문 마지막에서 알 수 있네요. 니체는 죽음으로 가는 허무주의는 비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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