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 / 1학기 4주차 발제 / 초전법륜경 5장 / 03.09.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목성.png

목성 / 1학기 4주차 발제 / 초전법륜경 5장 / 03.09.

페이지 정보

작성자 헤빛 작성일23-03-08 16:19 조회135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1 사성제 중에서 집제(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

 (1)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세 가지-일어나는 형태에 따라)

   ①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즐거운 생각이나 대상들을 좋아하는 것 /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탐욕)

    - 좋아하고 원하면 갈애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갈애로 넘어가면서 그러한 의도적 행위들이 바로 새로ㅇ생의 새로운 정신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는 이다.

   ② 존재에 대한 갈애(영원한 존재를 갈망)

    - 존재가 영원하고 변함없다는 믿음에 근거를 두는 삿된 견해에 집착하는 것(영혼이나 살아 있는 실체가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존재로 옮겨간다거나 영혼이나 살아있는 실체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삿된 견해)

   ③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음을 갈망)

   - 살아 있을 때만 존재하고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또는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완전한 소멸만이 있을 뿐이다는 삿된 견해

 (2) 갈애는 무엇인가?

   ① 태어남의 근본 원인(다시 태어남을 가져옴)

   ② 다시 태어남(존재함)의 괴로움으로부터 오취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괴로움에서 비롯하는 원천이 됨

   ③ 좋아하고 집착하는 갈애의 본성 때문에 어느 곳에서 몸을 받더라도 좋아하게 되고, 나타난 모든 감각 대상을 즐기는 것

   ④ 갈애로 인해 자신의 삶이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여기고, 이 삶이 영원히 지속되고 변하지 않으며, 즐거운 대상들이 지속되고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즐거운 대상들을 바라는 대로 유지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의도적인 행위가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와같은 선하거나 불선한 업 또는 의도적 행위는 새로운 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p285)

   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을 때의 강렬한 욕구와 유사하게 감각대상들을 애타게 구하는 것을 그 특성으로 하며, 끊임없는 재생을 일으키는 마음의 상태(p89)

 (3)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를 제거하려면?

   ① 갈애, 즉 집제를 제거하기 위해 성스러운 도의 수행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② 팔정도를 완벽하게 닦아서 아라한의 도과를 성취하면, 갈애가 완전히 소멸하여 더 이상 재생하지 않는다.

   ③ 성자들은 깨달음을 얻은 후 이를 반조하실 때 이것이 내 마지막 생이고 더 이상의 태어남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2. 위빠사나 팔정도 (5장의 내용에 있는 부처님 말씀을 위주로)

 (1) “너의 계를 청정히 하고(악행을 삼가는 것), 알아차림과 집중을 계발할 것이며, 업과 그 과보에 대한 견해를 바르게 하라.”

 (2)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벗어나려면 몸의 노력과 마음의 노력(모든 육체적인 동작을 알아차리는 정신적 노력)이라고 하는 위빠사나의 두 바퀴가 달린 수레가 필요하다.”

 (3) “그 길을 일러서 똑바름이라 하고, 그 방향은 두려움 없음이라 하며, 마차는 삐걱거리지 않음이라 하고, 그것에는 법륜이 달려있노라.” : (해석)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은 바로 위빠사나 팔정도이다.

 (4) “잘못을 부끄러워함이 그 등받이가 되고, 알아차림이 그 장비가 되며, 바른 견해가 앞서 달리는 법이 되나니, 그런 법을 일러 나는 마부라 하네.” : (해석 p346, 31) ‘바른 견해가 앞서 달린다는 것은 (중략) 위빠사나의 바른 견해가 오온 등을 무상. . 무아로 도를 통찰하여 청정하게 만든 뒤에, 도의 바른 견해가 존재의 토대를 얻은 윤회를 철저히 알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5) “나는 성스러운 도의 바른 견해(성스러운 정견의 도), 수레를 이끄는 마부인 위빠사나의 바른 견해라 한다.”

 (6) “이 마차에 탄 사람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이 마차에 올라타고 열반으로 가느니라.”

 (7) 팔정도를 계발하면 정신과 물질의 자연적 성품을 마치 자기 눈으로 보듯이 선명하게 알 수 있다. ,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정신과 물질 현상은 영원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 책을 읽거나 법문을 들어서가 아니라 몸소 체험함으로써 아주 분명해진다. 궁극에 가서는 정신과 물질의 행을 멈추고 윤회의 괴로움이 종식되는 열반을 체험한다. (p122)

 (8) 무상, , 무아를 지켜보는 것이 위빠사나 선정이다.(p177)

 

3. 열반이란 무엇인가?

 (1)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불이 완전히 꺼진 것

 (2)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번뇌가 완전히 소멸하였지만 과거 집착의 산물인 오온과 수명이 아직 남아있음

 (3)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수명이 다하고 오온마저도 완전히 소멸하는 아라한의 반열반

 

4. 12 연기(전체 괴로움의 덩어리) : 연기는 나고 죽는 윤회의 바퀴를 축으로,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인과 조건(p91)

    무명/ 명색육처/노사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

  ※ 팔정도 위빠사나를 끊임없이 지속하며, (갈애)를 알아차리고 소멸시키는 것

  ※ 무명(無明)-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불여실지견(不如實智見)

  ※ 여실지견(如實智見)-진리의 참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안다는 의미 / 팔정도의 정견(正見)과 궤를 같이 함

 

5. 감각대상은 업을 결정하는 마음이라고도 하는 죽는 마음의 속행에 의해서 집요하게 붙어 있다.(p286)

속행(速行)재빠름, 신속함을 뜻한다. 일단 대상이 무엇이라고 결정되면 일련의 인식과정이 일어나는데, 이는 마치 벼락 치듯 재빠르게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이 속행에는 의도적 행위가 개입하여 선한 마음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불선한 마음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이 업을 결정짓는 마음이다. 아라한에게는 이 속행이 선도 불선도 아닌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더 이상 업을 짓지 않지만, 아라한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는 죽음에 직면한 마지막 마음에서선과 불선이 개입된 바왕가(잠재의식-p342, 12)의 방해를 받으면서 시작하여 바로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으로 이어진다.(p342, 9)

 

<속행에 관한 생각> ‘속행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속행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습관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습관(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에너지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효율성을 고려하는 뇌의 전략)은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의식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채, 늘 하던 대로의 생각, 감정, , 행동이 체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다가온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습관은 여지없이 재빠르게 자동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습관적인 생각, 감정, , 행동이 속행으로 나올 수 밖에. 그렇다면 일상의 생활에서 어떠한 습관을 체화시킬 것인가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어차피 우리는 삶을 순환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이니까 악순환을 할 것인가, 진정으로 선순환을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따라서 갈애, 번뇌, 괴로움의 습관을 체화시키는 것은 악순환을 살아가는 것이고, 삼법인 정견(正見)을 토대로 팔정도의 바른 삶을 체화시키는 것은 선순환의 방향을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이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닐테지만, 바른 실천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 중에 중요한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6. 세상 어디에나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며, 갈애는 거기서 일어나서 거기에 자리 잡는다.”(p338)

- ‘갈애가 일어난다는 말은 즐겁고 기분 좋은 것들이 있어서 실제로 갈애가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마음을 속박하는 번뇌라고 한다. ‘자리 잡는다는 말은 기분 좋은 것들의 무상한 성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갈애가 잠재되어 자리 잡고 있다가 조건이 형성될 때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알아차리지 못해서 감각대상에 잠재하는 이 갈애를 대상에 잠재하는 번뇌라고 한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 번뇌를 제거해 준다. 주의 깊은 알아차림을 통해서 이것들을 무상, , 무아로 인식하지 못하면 갈애가 자라는 온상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두 가지 갈애, 즉 보고 들을 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여 일어난 즐거운 대상에 대한 잠재된 갈애와 기분 좋은 감각대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속박하는 갈애가 태어남과 같은 괴로움의 원인인 집 성제를 구성한다. 이 사실을 철저히 이해하고 기억해야 한다.

<함께 생각해 보기>

부처님 시대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갈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언젠가 보았던 책 내용이 기억나서 여기에 적어 봅니다.

 

 ⦁기쁘고자 하는 마음의 갈애(불충족감)

 ⦁많아지고자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의 갈애(불충족감)

 ⦁생사와 존재성에 대한 마음의 갈애(불충족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