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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4학기 6주차 3교시 한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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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수 작성일19-11-25 21:30 조회2,71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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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전

서역의 여러 나라들은 목축을 하였으며 흉노에 복속되었지만 풍속이 달랐고 서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한나라와는 무제 때부터 장건의 파견으로 처음 왕래를 시작하였는데 그 교역로가 실크로드이다.
한에게 서역의 땅은 결론적으로 “얻었다고 하여 이익이 없고, 잃었다고 하여 손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반고는 논찬을 하였다.

 당시 한나라는 서역 원정 추진을 역점을 쳤지만 결과는 “大同(왕, 신하, 백성, 시초점, 거북점이 모두 같은 결과)”이 아닌, 대과궤(택풍대과)가 나왔고, 신하들간의 공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제는 서역원정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고는 “훌륭한 덕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상대방에게서 취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서역 원정은 백성과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며 한무제의 과욕이 이유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무제는 치세 말기에 늦었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백성과 나라에 부담을 주었음을 후회하는 솔직한 모습을 <한서>에서 볼 수 있었다.


외척전_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할 화복

한 건국에서 효평제까지 외척이나 후궁으로 총애를 많이 받은 여인은 20여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위와 문을 보전한 사람은 겨우 4명이라 반고는 말한다.
그만큼 여인에 대한 왕의 총애는 최고의 부귀를 누리게도 하지만, 가장 두려워해야할 인간 화복이라는 것이다. 즉 겸허함으로 교만을 경계한다는 교훈을 반고는 외척전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 초기 고조가 죽고 여태후가 외척들을 등용하여 권력을 잡고 휘둘렀고, 효원제 때부터 조첩여로 인한 외척과 환관의 정치로 한나라는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댓글목록

임경원님의 댓글

임경원 작성일

효성제의 황후가 조첩여 입니다.